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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카스 작성일20-06-26 10:18 조회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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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생태주의 운동의 대표적 사상가로 활약
1991년 사재 털어 생태·인문지 창간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오래된 미래’ 등 출간

고 김종철 녹색평론사 발행인. 부산일보DB


한국의 대표적 생태사상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그는 생태 문명과 공동체 건설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일깨운 지식인이자 실천가였다.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0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1980년부터 영남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교수 재직 중인 1991년 사재를 털어 생태·인문에 근거한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창간했다.

<녹색평론> 창간은 그의 사상적 진전이었다. 등단 이후 <문학과지성> 계열에 이어 <창작과비평> 계열의 문학비평을 썼던 그는 문학적인 글쓰기를 넘어서려고 했다. 그는 “현실을 근원에서부터 직시하고 끊임없이 다시 봐야 한다. 세상에 대한, 지식 사회에 대한 절박한 위기감을 느낀다”고 하기도 했다. 세계의 궁극적인 문제,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내닫기 위해, 우리 시대의 근원적인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녹색평론>을 창간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녹색평론> 창간사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고 엄중히 물었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고인은 2004년 교수직을 내려놓고 생태 사상을 전파하고 생태 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녹색평론> 발간에 전념해왔으며, 2011년에는 녹색당 활동에도 참여했다.

“<녹색평론>이 곧 김종철이고, 김종철이 곧 <녹색평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고인이 편집과 발간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녹색평론>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공동체 사회의 회복과 재건을 목표로 삼았다. 우리나라 생태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주요한 사회 담론을 이끌어가는 매체였다.

고인은 지난 2008년에는 <녹색평론> 통권 100호 돌파를 기념해 그간 발행된 잡지의 서문을 모은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를 출간했다. 그는 그 책에서 세계가 가파른 벼랑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세계 전체를 통하여 지적 엘리트들이 드러내는 상상력의 빈곤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권력과 돈에 복종하고 협량한 명예욕에 사로잡힌 지식 사회, 그리고 헛된 글쓰기와 헛된 상상력을 꼬집었던 것이다.

고인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협동적인 공동체, 상부상조의 사회, 하늘과 땅의 이치를 따르는 농업 공동체, 생태학적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길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녹색평론>을 통해 그의 이러한 생태 사상을 널리 퍼뜨렸고, 그 목소리에 공감하는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독자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녹색평론> 독자모임은 전국적으로 수십여 개에 이르고 있다.

고인은 1978년 첫 평론집 <시와 역사적 상상력>를 내고 21년 뒤인 1999년 두 번째 평론집인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을 냈는데 이때 이미 생태주의로 나아가고 있었다. <대지의 상상력> <간디의 물레> <땅의 옹호> 등을 냈다. 평론집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으로 1999년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2001년에는 교보환경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

1996년 부인과 함께 번역해 출간한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는 녹색 상상력의 대명사적인 책이었다. 김종철은 오래된 미래의 녹색 상상력으로 우리의 영혼과 마음의 심장부를 건드리는 새로운 글쓰기를 지향한 생태사상가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태언(전 인제대 교수) 씨와 아들 형수(대학 강사) 씨, 딸 정현(<녹색평론> 편집장) 씨가 있다. 빈소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27일 오전 9시.
한국 생태주의 운동의 대표적 사상가로 활약
1991년 사재 털어 생태·인문지 창간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오래된 미래’ 등 출간

고 김종철 녹색평론사 발행인. 부산일보DB


한국의 대표적 생태사상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그는 생태 문명과 공동체 건설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일깨운 지식인이자 실천가였다.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0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1980년부터 영남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교수 재직 중인 1991년 사재를 털어 생태·인문에 근거한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창간했다.

<녹색평론> 창간은 그의 사상적 진전이었다. 등단 이후 <문학과지성> 계열에 이어 <창작과비평> 계열의 문학비평을 썼던 그는 문학적인 글쓰기를 넘어서려고 했다. 그는 “현실을 근원에서부터 직시하고 끊임없이 다시 봐야 한다. 세상에 대한, 지식 사회에 대한 절박한 위기감을 느낀다”고 하기도 했다. 세계의 궁극적인 문제,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내닫기 위해, 우리 시대의 근원적인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녹색평론>을 창간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녹색평론> 창간사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고 엄중히 물었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고인은 2004년 교수직을 내려놓고 생태 사상을 전파하고 생태 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녹색평론> 발간에 전념해왔으며, 2011년에는 녹색당 활동에도 참여했다.

“<녹색평론>이 곧 김종철이고, 김종철이 곧 <녹색평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고인이 편집과 발간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녹색평론>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공동체 사회의 회복과 재건을 목표로 삼았다. 우리나라 생태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주요한 사회 담론을 이끌어가는 매체였다.

고인은 지난 2008년에는 <녹색평론> 통권 100호 돌파를 기념해 그간 발행된 잡지의 서문을 모은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를 출간했다. 그는 그 책에서 세계가 가파른 벼랑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세계 전체를 통하여 지적 엘리트들이 드러내는 상상력의 빈곤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권력과 돈에 복종하고 협량한 명예욕에 사로잡힌 지식 사회, 그리고 헛된 글쓰기와 헛된 상상력을 꼬집었던 것이다.

고인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협동적인 공동체, 상부상조의 사회, 하늘과 땅의 이치를 따르는 농업 공동체, 생태학적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길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녹색평론>을 통해 그의 이러한 생태 사상을 널리 퍼뜨렸고, 그 목소리에 공감하는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독자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녹색평론> 독자모임은 전국적으로 수십여 개에 이르고 있다.

고인은 1978년 첫 평론집 <시와 역사적 상상력>를 내고 21년 뒤인 1999년 두 번째 평론집인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을 냈는데 이때 이미 생태주의로 나아가고 있었다. <대지의 상상력> <간디의 물레> <땅의 옹호> 등을 냈다. 평론집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으로 1999년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2001년에는 교보환경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

1996년 부인과 함께 번역해 출간한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는 녹색 상상력의 대명사적인 책이었다. 김종철은 오래된 미래의 녹색 상상력으로 우리의 영혼과 마음의 심장부를 건드리는 새로운 글쓰기를 지향한 생태사상가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태언(전 인제대 교수) 씨와 아들 형수(대학 강사) 씨, 딸 정현(<녹색평론> 편집장) 씨가 있다. 빈소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27일 오전 9시.
전남 영광 앞바다에 310MW (1조 2천억원) 규모의 해상풍력 프로젝트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대한그린에너지가 코스닥상장사인 케이알피앤이의 최대주주의 지분 및 전환사채 100억원을 취득한다고 25일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전남 두우리에 총 310MW(약 1조 2천억 이상)의 해상풍력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대한그린에너지가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과 발 맞춰 대규모 프로젝트들의 개발에 본격적인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냐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상장법인 인수를 통해 대규모 프로젝트 개발을 수행할 자금 마련에 나선 만큼 대규모 프로젝트의 개발에도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한편, 대한그린에너지는 국내 최대규모의 풍력발전인 영광풍력발전(79MW)을 비롯해 국내 최대규모의 태양광발전인 광백태양광발전(99MW)을 개발 완료 후 운영 중에 있는 기업(2019년도 매출 1620억, 영업이익 133억원)으로 최근 공격적인 사업개발 및 투자를 이어가면서 향후 재생에너지 업계의 대표기업으로 관심받고 있다.
"승차감, 조종 안정성 향상"
'오트 쿠튀르' 스타더스트 에디션 50대 한정판매
[CBS노컷뉴스 유동근 기자]

제네시스 G90 스타더스트 에디션. (사진=제네시스 제공)
제네시스는 26일 기함(flagship) 모델인 G90의 2021년형 모델과 스페셜 에디션 '스타더스트(Stardust)'를 공개했다. 다음달 2일부터 판매를 시작한다. "상품성을 대폭 강화했다"고 한다.

2021년형 G90는 제네시스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 지능형 전조등을 전 트림 기본 적용하고 후방 주차 충돌방지 보조, 19인치 신규 휠 등을 채택했다.

제네시스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Genesis Adaptive Control Suspension)은 주행상황별로 진동을 최소화하고, 앞바퀴와 뒷바퀴의 감쇠력을 적절히 배분해 승차감뿐만 아니라 조종 안정성까지 높였다.

또한 지능형 전조등(Intelligent Front-lighting System)은 상향등을 켜고 주행 시 선행 차량 및 대향 차량이 나타나면 전방 카메라를 통해 차량을 인지하고 차량이 있는 영역만 선별적으로 상향등을 소등해 G90 운전자의 전방 시인성을 확보하면서도 상대 차량 운전자의 눈부심을 방지해준다.


(사진=제네시스 제공)
후방 주차 충돌방지 보조(PCA-R, Parking Collision-Avoidance Assist-Reverse)는 주차 및 출차를 위한 저속 후진 중 보행자나 장애물과의 충돌이 감지 됐을 때 운전자에게 경고하고 필요 시 브레이크를 자동 제어해 안전 운전에 도움을 준다.

한편 2021년형부터 G90의 스페셜 에디션인 '스타더스트'를 50대 한정된 수량으로 제작해 판매한다.

국내 고객들만을 위해 새롭게 선보이는 '스타더스트'는 밤하늘을 채운 반짝이는 은하수 아래 레드 카펫에서 화려한 카메라 조명 세례를 받는 유명인사의 모습을 표현했다. "오직 한 명을 위해 특별 제작하는 고급 맞춤형 의상인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 현대자동차그룹의 설명이다.

특히 '스타더스트'는 다크 그레이 바탕에 반짝이는 입자가 그윽하게 빛나는 카본 메탈과 비크 블랙 투톤 색상으로 완성된다. 제작의 일부가 별도의 도색 라인에서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제네시스 디자인 담당 이상엽 전무는 "G90 스타더스트는 제네시스 디자인이 추구하는 우아한 럭셔리의 최정점"이라며 "이 시대의 리더들에게 바치는 경의와 존경을 담았다"고 밝혔다.

2021년형 G90의 가격은 3.8 모델 △럭셔리 7,903△프리미엄 럭셔리 9,375만원 △프레스티지 1억 1,191만원, 3.3 터보 모델 △럭셔리 8,197만원 △프리미엄 럭셔리 9,670만원 △프레스티지 1억 1,486만원, 5.0모델 △프레스티지 1억 1,977만원, △리무진 1억 5,609만원, 스타더스트 1억 3,253만원이다.(※기획재정부 개별소비세법시행령 일부 개정 입법예고(6/3일) 기준)
품계 받은 기록 없고 전설 전해지다 보은군지에 담겨
수령 600년도 의견분분…문화재청 "확인 필요 못느껴"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충북 보은 속리산 초입을 지키고 있는 정이품송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는 소나무다.


정이품송[연합뉴스 DB]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단일 소나무 34그루 중 수령이 600년 이상인 7그루에 속할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벼슬을 받은 나무로 알려져서다.

오랜 투병생활 속에 태풍·폭설에 가지가 부러지는 수난도 겪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수세를 회복해 속리산의 상징으로서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정이품송은 1464년 보은 법주사로 행차하던 세조가 "연(輦, 임금이 타는 가마) 걸린다"고 하자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렸고, 이를 가상히 여긴 세조가 정이품의 벼슬을 하사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정이품송은 '연걸이 소나무'로도 불린다.

정이품은 판서에 해당하는 품계로, 지금의 장관급이다.

그러나 세조가 이 소나무에 정이품 품계를 내렸다는 내용은 조선시대 실록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보은군이 펴낸 군지(郡誌)에는 담겨 있지만 그 이전까지는 전설로 내려왔을 뿐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도 "정이품송 전설은 말 그대로 전설일 뿐"이라고 말했다.

세조실록에도 '거가(가마)가 보은현 동평을 지나 저녁에 병풍송(屛風松·정이품송으로 추정)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정이품송에 얽힌 이야기는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설이라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품계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조선시대 문인이자 1628년 충청감사를 지낸 정문익(1571∼1639년)의 한시 '차연송'(車輦松)에서 세조와 정이품송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단초가 있다.

이 한시는 정이품송의 늠름한 자태를 묘사한 것인데, 정이품 벼슬을 받았다는 내용은 없지만 제목에 임금의 가마를 뜻하는 '연'이 포함돼 있다.

정이품송의 전설이 1600년대에도 존재했음을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이다.

정이품송의 수령에 대한 시각도 여럿 있다.

문화재청은 1962년 정이품송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당시 수령을 600살로 봤는데, 이 역시 정확한 것은 아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정이품송을 언제 심었다는 기록 역시 없다"며 "다른 천연기념물의 수령도 마찬가지지만 마을에서 전해오는 전설을 토대로 추정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무에 구멍을 뚫어 나이를 측정하는 방법이 있지만 수령이 오래됐다고 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것도 아닌 만큼 정밀측정 필요성을 느끼진 못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어림잡아도 800살 이상 됐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보은군 관계자는 "세조 때 가마가 나무 밑을 지나가고 비를 피할 정도로 소나무가 컸다면 수령에 족히 200년을 더해도 무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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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김건일 기자] 26일(한국시간) 맨체스터시티와 첼시의 경기로 리버풀의 우승이 확정되자 프리미어리그 중계방송사 스카이스포츠는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과 영상 통화를 연결했다.

클롭 감독은 평소 입는 트레이닝복이 아닌 리버풀 저지 차림에 리버풀 모자를 썼다. 마치 중년의 리버풀 팬 차림이었다.

클롭 감독의 얼굴은 벌게져 있었다. 우승 소감을 묻는 말에 즉각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닦아 내고서야 클롭 감독은 입을 뗐다.

"믿을 수 없다.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리버풀과 챔피언이 됐다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함께 연결된 리버풀 전설 케니 달글리시를 향해 "당신이 우리를 얼마나 지지했는지 알고 있다. 당신에게 우승을 바친다"고 전했다.

이어 "스티브 제라드와 리버풀 모두에게 모두에게도 이 영광을 돌린다"고 덧붙였다.

제라드와 달글리시는 리버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 달글리시는 선수 겸 감독으로 1989-20시즌 리버풀의 1부리그 마지막 우승을 경험했다. 반면 제라드는 리버풀 1군 팀에서 뛴 17시즌 동안 리그 우승 경력이 없다.파워볼엔트리

클롭 감독은 팬들을 향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모이지 말고 집에서 축하해 달라"며 "나와 같이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모자를 쓰자. 우린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버풀은 이날 맨체스터시티가 첼시에 1-2로 지면서 승점 86점으로 7경기를 남겨두고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조기에 확정지었다.

30년 만에 잉글랜드 프로축구 1부리그 정상이자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엔 첫 우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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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KBO리그 롯데와 KIA의 경기가 열린다. 장맛비로 인해 경기장에 방수포가 깔려있다. 더블헤더 첫 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됐다. 부산=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20.06.25/
[수원=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장마철에 접어든 KBO리그의 화두는 '더블헤더'다.

24일 잠실(키움-LG), 인천(두산-SK), 수원(NC-KT), 부산(KIA-롯데) 경기가 비로 열리지 못했다. 이 경기들은 이튿날인 25일 더블헤더로 편성됐다. 하지만 장마전선 북상으로 지역마다 비가 이어질 것이란 예보에 각 팀들은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경기 도중 비가 내려 가다서다를 반복하면 낭패 중의 낭패다. 긴 경기 시간으로 인한 피로 누적, 불펜 운영 등 모든 구성이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 더블헤더 일정인 만큼, 이어질 경기를 고려하면 비가 그치기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KBO는 올 시즌 더블헤더를 비롯해 서스펜디드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5회 이전 날씨로 인해 경기 속행이 어려울 경우,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선언한 뒤 추후 경기를 재개하는 것. 13일 대전 두산-한화전이 경기 중 내린 비로 서스펜디드 선언돼 이튿날 3회초부터 속개된 바 있다.

그렇다면 과연 더블헤더에서도 서스펜디드 게임이 가능할까.

더블헤더 1차전 취소시 서스펜디드 게임 적용 대신 노게임 처리된다. 1차전을 서스펜디드 선언한다고 해도 2차전 일정이 기다리고 있고, 추후 재편성해 속개하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1차전이 취소될 경우, 2차전에서도 서스펜디드 게임 적용은 불가능 하다. KBO는 서스펜디드 게임 또는 더블헤더 1차전이 취소되고, 두 번째 경기도 날씨로 중단될 경우, 두 경기 모두 노게임 처리한 뒤 추후 일정을 편성하도록 했다.

KBO는 더블헤더, 서스펜디드 게임 제도 도입과 함께 월요일 일정 추가 계획도 세워놓았다. 주말 3연전 도중 취소 경기가 발생하면 월요일로 일정을 하루 미뤄 치를 수 있게 했다. 때문에 주말 더블헤더 경기의 경우, 취소가 되더라도 월요일 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주말 더블헤더-서스펜디드 게임의 월요일 일정 포함은 다소 복잡한 셈을 거쳐야 한다. 더블헤더 1차전 내지 서스펜디드 게임이 취소되고 2차전만 열릴 시, 앞 경기 일정은 노게임 선언 후 추후 더블헤더로 편성되지만 월요일 일정엔 포함되지 않는다. 더블헤더 1차전이나 서스펜디드 게임이 열린 뒤 2차전 일정이 취소된 경우에도, 2차전은 월요일 편성 대신 추후 더블헤더로 재편성된다. 1차전이 취소되고 2차전이 경기 중 중단되면 두 경기 모두 노게임 선언돼 추후 편성된다. 다만 두 경기가 모두 취소되면 1차전은 추후 배정하더라도 2차전은 월요일에 경기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25일 사직 KIA-롯데 간 더블헤더 경기는 1, 2차전 모두 비
로 취소됐다. 잠실, 인천, 수원 세 경기는 예정된 더블헤더 일정을 소화했다.


[뉴스엔 김재민 기자]

2019년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2020년 프리미어리그 우승. 리버풀은 빅클럽이 맞다.

리버풀이 30년 한을 풀었다. 리버풀은 6월 26일(이하 한국시간) 맨체스터 시티가 첼시 원정 경기에서 1-2로 패하면서 남은 7경기 결과와 관계 없이 2019-202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이로써 리버풀은 1989-1990시즌 1부리그 우승 이후 첫 1부리그 우승이자 프리미어리그 창설 이후 첫 리그 우승을 맛봤다.

지난 6년간 리버풀 팬을 괴롭혀 온 세 글자, '리빅아'는 더 이상 없다.

'리버풀 빅클럽 아니야'를 줄인 '리빅아'는 지난 2014년 영국 '데일리스타'가 보도한 기사에서 쓰인 후 국내 축구팬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번진 말이다. 당시 기사는 루이스 수아레스를 바르셀로나로 보낸 후 공격수 보강을 노린 리버풀이 벤제마를 영입하고자 했지만 벤제마 측에서 리버풀은 벤제마를 영입하기에는 충분히 크지 않다는 식으로 거절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벤제마 측이 실제로 그런 말을 남겼는지, 기사 원문을 해석했을 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사실 관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리빅아'는 몰락한 명문을 조롱하는 의도로 쓰기에 너무 좋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리버풀은 여러 조롱 멘트에 시달렸다. 거스 포옛 전 선덜랜드 감독이 수아레스가 없는 리버풀은 중위권 팀이라고 남긴 말을 줄인 '리중딱'(리버풀은 중위권이 딱이야)도 국내 축구 커뮤니티의 유행어가 됐다.

2014년 우승 경쟁팀인 맨시티에 극적으로 승리한 후 주장 스티븐 제라드가 선수들을 모은 후 다음 경기 각오를 다지며 남긴 '위 고 노리치' 역시 리버풀이 2013-2014시즌 우승에 실패하면서 조롱거리가 됐다. '위 고 노리치'가 밈으로 굳어지며 리버풀이 노리치 시티전에서 패해 우승에 실패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제는 그런 조롱도 끝이다. 지난 2년간 리버풀은 유럽에서 가장 강한 팀이었다. 2018-201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2019-2020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이 이를 증명한다.

세부 기록으로도 리버풀의 지난 2년은 경이로웠다. 지난 시즌 리버풀은 리그 우승을 승점 1점 차로 놓쳤지만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 승점 3위 기록을 세웠다. 당시 리버풀이 기록한 승점 97점은 2017-2018, 2018-2019시즌이 아니면 언제든 우승이 가능한 승점이고 다른 빅리그 우승팀인 유벤투스,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보다 더 좋은 성적이었다.

이번 시즌 기록은 더 놀랍다. 리버풀은 리그 27라운드까지 26승 1무 무패를 달리며 일찌감치 우승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31라운드를 치른 현재 성적은 28승 2무 1패 승점 86점. 맨시티가 2017-2018시즌 달성한 프리미어리그 최고 승점(100점), 최다 승(32승) 기록도 가시권이다. 리버풀이 남은 7경기에서 5승만 거둬도 두 기록 모두 경신할 수 있다.

이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리버풀은 지난 2년간 유럽 빅리그에서 승점을 가장 많이 쌓은 팀이자 리그 경기에서 승리가 가장 많은 팀이다. 동시에 챔피언스리그 디펜딩 챔피언이자 프리미어리그 현 챔피언이다.파워볼

역사적으로도 리버풀은 리그 우승 19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6회, 유로파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7회, 리그컵 우승 8회를 경험했다.

리버풀은 빅클럽이 맞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문장이다.(자료사진=리버풀 팬이 달아놓은 배너)

'내 시선을 담으면서도 객관적으로, '객나적'으로 쓰겠습니다'

[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유호빈 기자= 한국에서 모델Y는 우선 수퍼차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7일 카가이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테슬라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 모델Y 제원표 가운데 수퍼차저는 ‘사용량에 따른 요금’이라고 게재됐다.

테슬라 코리아는 지난 4월 전기차 충전사업을 위해 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에 충전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내년쯤 수퍼차저 유료화가 예견된 상태다.

올 3월 수입차 판매 1위를 달성한 모델3를 앞세워 테슬라는 한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출고 대기가 6개월을 넘긴 상황에서 1분기 국내 전기차 판매량의 절반(46%)을 차지하며 수입차는 물론 전기차 1위를 질주한다.


테슬라는 일본보다 한국을 우대하는 분위기다. 이미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 보급이 40%가 넘는 일본보다 한국이 전기차 보급에 유리하다고 판단, 한국에 먼저 충전 인프라를 투자했다. 현재 전국 32곳에 '수퍼차저' (급속 충전소)와 155곳의 '데스티네이션 충전소' (완속 충전소)을 무료로 운영한다. 사실상 테슬라 차량으로 전국 어느 곳을 다녀도 주행이 가능하다. 테슬라 입장에서는 앞으로 충전시설을 더 확대하기 위한 재원 마련 차원에서 그동안 무료로 진행했던 충전 서비스를 유료 전환 수순을 밟고 있다.


테슬라 코리아는 지난해 11월 모델3를 출시하면서도 충전서비스는 유료 전환 가능성을 언급한 적도 있지만 정확한 시기를 밝히지 않았다. 모델3는 아직까지 무료로 수퍼차저를 이용할 수 있다. 테슬라 코리아 홈페이지 내용을 보면 모델Y 판매 시작 시점부터 우선 모델3와 모델Y 충전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모델3를 기반으로 만든 SUV인 모델Y 국내 출시 일정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출시 시점이 하반기로 연기된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미국 등 12개 국가에서는 온라인 예약을 시작한 상태다. 아직 국내에서는 예약이 불가하다. 미국에서는 3월부터 출고가 시작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 목포의 방파제이자 파수꾼인 ''고하도''
- 2012년 개통한 목포대교로 육지가 돼
- 일제강점기, 국내 최초 육지면 재배 시작
-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 머물기도


목포해상케이블카를 타고 바라본 고하도의 모습. 섬 모양이 ‘용’을 닮았다고 해서 ‘용섬’이라고도 불린다. 판옥선전망대 너머로 해안데크길과 목포대교, 그리고 신안의 섬들이 보인다.


[목포=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전남 목포는 수많은 시간을 품은 도시다. 원도심에 있는 수많은 일제 강점기 근대 건축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길은 임진왜란 시절 조선에까지 이른다. 이순신 장군의 지략담을 전하는 유달산 노적봉과 최후의 전투였던 명량해전을 준비했던 고하도(高下島) 등. 항구도시 목포는 겹겹이 쌓인 시간 속으로 사람들이 오가며 수많은 이야기를 품었다. 올 초 목포는 지역관광거점도시로 선정됐다. 내륙과 다도해 2000여개 섬들을 이어주는 허브도시가 바로 목포여서다. 또 대양과 대륙을 이어주는 통로다. 호남선의 종착지이면서, 끊어진 남북 철도가 다시 이어지면 유라시아 대륙횡단의 출발지가 바로 목포다.


목포 고하도 바다 사이를 건너가고 있는 목포해상케이블카


◇목포대교로 육지가 된 섬 ‘고하도’

이번에 소개하는 곳은 목포의 부속섬, 고하도(高下島)다. 고하도는 목포항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목포항에서 약 2km 지점에 있다. 목포항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중요한 섬이다. 여기에 서남해에서 배를 타고 내륙의 영산포까지 연결하는 영산강의 관문 역할을 한다. 목포 사람들은 흔히 ‘용섬’이라 부르는 섬. 섬 모양이 풍수지리적으로 용(뱀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2012년 개통한 목포대교를 통해 쉽게 고하도에 들어갈 수 있다. 양쪽에 다리가 놓이기 전, 고하도 사람들은 ‘바다의 시내버스’라 하는 근해 순회관광선을 타고 뭍을 오갔다. 정기항로인 여객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방법은 지난해 9월 개통한 목포해양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것이다. 북항~유달산~고하도로 이어진 이 케이블카는 국내 최장인 3.23km에 달한다. 특히 바다 위 150m가 넘는 높이에서 목포의 진산인 유달산 등 숨겨진 비경을 볼 수 있어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삼학도 크루즈에서 바라본 고하도와 목포 대교의 야경


목포 북항에서 차를 타고 목포대교를 건너 고하도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나지막한 언덕이 나타난다. 이곳이 예전에는 섬이었는데, 지금은 주변을 막아 고하도와 하나가 됐다. 이 섬이 바로 ‘장구섬’이다. 섬의 모양이 장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장구섬을 지나면 작은 마을이 있다. 고하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원마을, 고하리다. 4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적막했던 이 마을이 최근 활기를 찾고 있다. 목포시가 고하도 개발에 발벗고 나서면서부터다. 지난해에는 목포해상케이블카가 개통했고, 올해는 목화체험장도 개장한다.


목포해상케이블카를 타고 바다 건너편 고하도로 가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한을 품은 고하도

일제강점기였던 약 100년 전. 당시 목포항은 부산, 인천과 함께 전국 3대항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 배경에는 역사적인 장소, 고하도가 있었다. 일제는 고하도에 목화밭을 조성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육지면을 재배한 곳이 바로 고하도였다. 고하도 선착장에는 ‘조선육지면발상지비’(朝鮮陸地綿發祥之碑)가 있다. 이 비에는 ‘1904년에 고하도에서 처음으로 육지면 재배를 시작하였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육지면은 고려시대 문익점 선생이 들여온 재래면과는 다른 종이다. 원산지가 남미로, 따뜻한 곳에 잘 자라는 면화로 미국면이라고도 한다. 일제는 미국산 육지면을 고하도에 시험재배했고, 재배에 성공하면서 전국적으로 퍼졌다. 당시 고하도에서 생산한 면화는 국내 생산량의 30∼40%를 차지할 만큼 번창했다. 이후 목포는 ‘삼백(三白·목화, 소금, 쌀)의 도시’라는 타이틀과 함께 급성장했다. 최근 고하도에 목화체험장도 문을 열었다. 최근 목포시는 고하도에 체험관, 전시관, 테마길 등을 조성해 ‘육지면의 발상지’라는 역사적 가치에 의미를 더하고 있다.


최근에 개장한 고하도 목화체험장


제국주의를 꿈꾸던 일제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일제는 조선의 민간인을 징병해 고하도 해안 곳곳에 진지 동굴을 팠다. 유달산이 바라보이는 해안가에는 당시에 판 그리 깊지 않은 동굴이 여럿 있다. 동굴에는 단단한 해안 암반을 정과 폭약으로 판 흔적이 남아 있다. 75년 전 이곳에서 일제의 감시하에 정으로 굴을 팠을 선조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이 동굴 진지는 일제가 목포항으로 접근해 들어오는 적선을 공격하기 위한 ‘자살특공대’를 숨겨놓으려 파 놓은 것이다. 고하도 외에도 여수시 삼산면 동도리 해안,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어불도 해안에서도 발견됐다. 조금 다른 형태의 동굴도 있다. 입구는 조그마하지만, 들어가 보니 ‘Y’자형으로 갈라져 제법 길게 파여 있다. 상당히 넓은 공간이다. 아마도 수상특공부대의 지휘본부와 관련된 듯했다. 고하도 진지 동굴은 모두 20여 곳이었지만, 목포대교 건설 도중 상당수가 사라지고 지금은 10여개가 남아 있다. 모두 목포가 바라다보이는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다.


고하도 일본진지에서 바라본 유달산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켰던 파수꾼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킨 섬도 고하도였다. 명량대첩에서 대승을 거둔 이순신 장군도 고하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제주도와 울돌목으로 통하는 바닷길에 자리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바닷길과 영산강의 내륙 수로가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고하도가 무너지면 호남의 곡창지대를 일본군한테 고스란히 내줄 수밖에 없다고 봤다. 작은 섬 고하도가 조선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한 셈이다.

이순신 장군은 고하도를 전략적 요충지로 삼았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 ‘(고하도가) 서북풍을 막아주고, 수군의 배를 숨기기에 아주 제격’이라고 적었을 정도였다. 이순신 장군은 완도 고금도로 통제영을 옮겨가기 전까지 108일 동안 이 섬에 머물렀다. 그는 이곳에서 군량미를 확보하고, 조선 수군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충무공을 기리기 위해 만든 모충각


고하도에는 진의 성터가 남아 있다. 진영이 있는 곳은 불당골, 용오름길의 큰산 아래 부근이다. 칼바위에서 말바위 가는 길에는 성터의 흔적도 남아 있다. 자연적인 바위를 이용하여 쌓은 석성의 형태다. 난중일기에 그 건설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당시 비축된 군량미는 486석에 달했다. 유달산이 보이는 바닷가 해안길을 따라가면 충무공을 기리는 모충각(慕忠閣)이 있다. 군량미가 많게 보이기 위해 쌓았다는 유달산 노적봉을 마주하고 있다.

최근 설치한 용머리 해안데크에도 이순신 장군의 조형물이 있다. 해안데크는 고하도 판옥선전망대에서 용머리까지 해상에 설치한 연장 약 1km 폭 1.8m의 해안 산책로다. 목포시는 이 산책로 용머리와 중간지점에 넓은 광장 형식의 포토존 2개소를 설치했다. 용머리 포토존에는 높이 4m의 용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중간지점에는 4m 높이의 이순신 장군 조형물을 설치했다.


목포 대반동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고하도와 목포대교


◇여행메모

△잠잘곳= 목포의 하당신도시에 호텔들이 몰려 있다. 상그리아 비치호텔, 폰타나비치관광호텔, 유토피아가족호텔, 샤르망호텔, 시월애호텔 등이 있다. 유달산 아래 유달유원지 부근의 신안비치호텔도 오래되긴 했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먹을곳= 온금동의 선경준치횟집은 준치회비빔밥과 아귀탕이 별미다. 특히 가시가 많은 준치를 잘게 썰어서 채소와 고추장에 무치고 밥을 넣어 쓱쓱 비벼 먹는다. 조기구이·갈치구이·병어찜 등 구이·찜류와 마른우럭맑은탕 등도 낸다. 하당로에 있는 명인집은 간장게장 정식이 유명하다.


선경준치횟집의 병어회
'그림대작' 무죄 확정에 엇갈린 미술계 반응…"당연한 결과" vs "자괴감 느껴"




(서울=연합뉴스) 조수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그림을 자신의 작품으로 팔았다가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 씨에게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로 판결을 원심을 확정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하는 조 씨. 2020.6.25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4년여에 걸친 가수 조영남 씨 '그림 대작' 사건이 25일 대법원의 무죄 확정으로 일단락됐다.

이번 사건은 조수 도움을 받은 것이 미술계 관행이라는 조영남 씨 주장으로 초기부터 미술계 내부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반응은 엇갈렸다.

고전적인 창작의 가치가 전복된 현대미술에서 조수의 그림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의견과 작가의 양심에 위배되는 부끄러운 행위라는 비판이 동시에 나왔다.

현대미술에 대한 시각차를 드러낸 이번 사건은 한국 미술사에 적지 않는 파장을 남길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미술 맥락에서 이해해야…미술계 성찰 계기"


대법원은 화투를 소재로 한 조 씨 작품은 작가의 고유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고 조수는 기술 보조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무죄를 확정했다. 조수 작가를 고용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미술계 관행이라는 조씨 측 입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예술계에서도 미학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이 이런 입장을 밝혀왔다.

진 전 교수는 지난해 펴낸 책 '미학스캔들'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소극(笑劇)"이라고 이번 사건을 규정했다.

그는 미술사에서 '작품의 물리적 실행'을 조수에게 맡기는 서양미술 전통을 소개하면서 "자기 손으로 직접 작품을 그리거나 만드는 것은 더는 예술의 필수 요건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진 전 교수는 이날 판결이 나온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중이야 몰라서 그런다 쳐도, 그걸 알아야 할 전문가 집단마저 현대미술이 탄생한 지 100년이 넘었건만 예술에 대한 이해 수준이 19세기 인상주의 시절에 가 있으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썼다.

김영호 중앙대 미술학부 교수도 "무죄는 예상된 결과"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대미술에는 과거와 달리 '이것이 예술'이라는 기본적 원리나 창작 기준이 없어서 조 씨를 미술사적 맥락에서는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대미술 영역에서는 기존 예술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컨셉트를 새로운 예술 생산의 미학적 원리로 채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어 "옛날에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을 위반하면 나쁜 그림이었으나 모더니스트들이 그것을 부정했고 예술종말론이 나왔다"라며 "이른바 예술이 죽어버린 시대가 되면서 쓰레기나 똥, 오줌까지 모든 것이 예술작품으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국민적 정서를 고려하면 조씨가 비난받을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술사나 미학적 기준으로는 처벌 근거가 없지만, 예술을 자본이 지배하는 현 구조에서 상업적 윤리를 따지면 비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건은 한국 예술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사건으로 미술계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라며 "오늘날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과 자본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다수 작가 자괴감 느껴…진지하게 접근해야"


무죄 판결에도 조영남 씨에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다.

조수를 쓰는 것이 미술계의 흔한 관행이라는 주장은 현실과 다르며, 이날 대법원 판단으로 혼자 작업하는 대다수 작가가 오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미술협회 사무처장인 서양화가 김용호 씨는 "이런 사안으로 법원에 간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는데, 법원 판단으로 마치 전체 화가가 조수를 쓰는 것처럼 오도될 수 있어 자존심 상하고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업작가 대다수는 혼자 그리며, 작업량이 많아 조수를 쓴다는 것은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라며 "(이번 판결이) 인생을 걸고 그리는 작가들이 가볍게 취급되도록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작가의 양심과 도덕의 문제를 떠나 노동의 대가로 봐도 조씨는 보조작가에게 너무 인색했다"라며 "앞으로 조씨가 무죄라고 당당히 대작을 그릴 텐데, 그를 작가로 취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가수와 배우 등 유명인들의 작품 활동이 늘어나면서 전업작가들이 느끼는 박탈감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조 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앞으로 더욱 진지한 활동으로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미술사학자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크게 보면 조영남 씨가 법적으로 무죄를 받았지만 예술적으로는 많은 숙제를 받은 것"이라며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 반 우려 반"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판결을 존중하지만 그동안 나온 비판이 모두 해결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결국 작가 본인이 진정한 작품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파워볼사이트

또한 그는 "화가가 탄생하고 이름을 얻으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최근 유명인들이 쉽게 진입해 상업적 이익까지 누린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 젊은 작가들이나 고생하는 화가들이 자괴감을 느낄 수 있음을 알고 연예인들이 더 진지하게 미술을 바라봤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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